개량, 그에 대한 변명.
모든 사유하는 자들은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자 한다. 그러나 모든 이상은 그 정의에서도 분명히 나타나듯 현실과의 필연적 거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상은 가끔 현실의 법칙을 '거스른다'.

이상이 현실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을 경우 그렇지 않겠지만, 문제는 이상이 현실의 법칙을 거스를때다. 그때에 우리는 현실세계와의 차가운 대립 속에서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의 법칙을 완전 거부 하는 것은 얼마만큼 비도덕적이거나(폭동이 초래하는 사회혼란을 생각한다면, Martin Luther King과 Malcolm X중 누가 더 도덕적인가?), 내가 감당할 수 없다(나는 꿈에도 King목사처럼 살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현실의 법칙을 인정하는 안에서 이상을 펼쳐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개량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개량을 선택하는 한, 내가 주장할 수 이상은 아마 상당히 축소될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난 가난을 선택할 자신이 없기에 권정생선생님처럼 "승용차와 아파트를 버려라"고 말할 자격 따위는 없을 듯 싶다.

http://gyuhang.net/archives/2004/09/22@12:25PM.html
by 1noman | 2004/09/22 19:00 | 혁명전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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