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Queen of Self destruction(I'm bleeding)
옛적에 네가 내 전부가 되고도
내가 네게 아무 존재도 아니었음에
너는 내게 파괴의 여신이 되었다

난 널 사랑함으로 파괴되어야 할 저주의 재물이 되고
넌 나의 사랑을 받음으로 날 저주할 저주의 여신이 된다

파괴의 여신이여,
저주의 피로 나를 적셔 날 뜨겁게 저주하라

저주의 여신이여,
나의 눈물을 그대의 발아래 짓밟아 나의 눈물을
저주의 쓴 물로 바꾸어라

난 네게 파괴된 바 됨으로 네게 어떤 의미가 되고
난 네게 짓밟혀 너의 대상으로서의 분명한 객체가 된다

저주와 파괴의 여신이여,
날 밟아 으깨어 나의 고통의 끝에
너의 발아래 한조각 부스러기 나마 되게 하라

난 네게 그런 의미가 된다
네게 이미 기억될 수 없는바 내겐 그것으로 족하다
by 1noman | 2005/03/29 03:12 | 스치는 감상 | 트랙백 | 덧글(2)
She's bleeding
언제나 아름답던 넌 죽어가면서까지 아름답구나
이미 내곁에 있지 못할 널 네 피를 흘림으로 내곁에 둔다

아름다운 너, 더 붉은 피를 흘려 더 아름답게 죽어가라
이미 떠나야 할 널 아름답게 죽여 내 여인으로 남긴다

죽어가는 네모습이 아름다워 난 눈물 흘리고
내 눈물이 네 피와 섞여 넌 내 인생 유일한 여인이 된다

언제나 아름답던 넌 죽어서까지 아름답구나
이미 내곁에 있지 못한 네 미소,
내 손과 내 가슴에 적셔진 붉고 뜨거운 네 피,
평생에 간직할 너의 마지막 뜨거운 숨결
잊혀지지 못할 너의 마지막 눈빛
아아, 난 널 기억함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by 1noman | 2005/03/27 12:52 | 스치는 감상 | 트랙백 | 덧글(0)
자살?.... 어쩌면 타살
사람들 간에 이견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난 모든 논리적 추론의 전제가 인간의 목숨의 절대적 소중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어떤 의미에서건 자살을 지지할 수는 없다. "이 따위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세상을 고쳐야 할 의무를 지닌 것이며, 그 세상을 죽음으로 회피하는 일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도 내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따위 세상"을 '그저' 안락하게 살아가는 사람보다, "이 따위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 "이 따위 세상"이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사람(전태일이 그랬듯)을 보다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나처럼 안락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나는 이미 죽도록 고통스러운 사람들에 대한 가해자인지도 모른다.

p.s 마침 이 글을 읽을 때에 나의 귀에는 Ozzy Osbourne의 "Suicide Solution"이 들려온다.

규항님의 "죽을 줄도 모르는" 읽으러 가기
by 1noman | 2005/03/16 14:03 | 혁명전야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그렇다면,
규항님은 내가 아는 가장 불편한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규항님의 "김민기" 읽으러가기
by 1noman | 2005/03/02 15:25 | 혁명전야 | 트랙백 | 덧글(5)
종교인들에게
얼마전까지, 그러니까 내가 교회에 다니던 기간에, 난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많은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은 세상의 모든 일보다 종교에의 귀의(불교용어인 이말은 이상황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어떤 한가지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주장(파시즘이라고 하더라)은 역사속에서 항상 위험하게 사용되었다. 한국의 군사정권은 북괴를 막기위한 가치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주장으로 개인의 존엄을 말살했고(그것은 개개인의 예술적, 사회적 모든 성취를 가로막아왔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자민족의 국력 팽창이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주장으로 당시의 모든 신민과 아시아 민중을 괴롭혔다.

그처럼 종교에의 귀의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주장 또한 위험하다. 종교의 번영자체도 다른 가치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기독인들은 자신들의 열성적 선교가 많은 교인, 큰 교단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들의 목표라 주장되는 "만민선교"나, "땅끝까지의 진리전파"를 위해서라면, 선교의 대상이 "굶어죽지 않기 위한 복지"나, "전쟁에서 희생되지 않기 위한 세계평화"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그대들은 종교가 모든것을 해결해 주는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옛역사속의 비극속에 항상 등장했던 파시즘이 교회에서도 주창되는건 우연이 아니다. 교회는 현재의 비극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많은 교회는 특권층의 특권유지를 주장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의한 민중에의 폭압을 돕고있으며,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에도, 신나치주의에도 기독교가 개입해왔다.

물론 기독교의 존재가치자체를 거부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분명 지적해 두고 싶은건, 종교가 이 세상 가운데서 하는 일이 몹시 중요할진 모르겠지만, 다른 모든 것들을 배재하고 독립적으로 가치를 가질만한 일은 아니며, 종교가 이루는 선한 일은 많든 적든 이 세상의 일부다. 종교는 특별하다기보다 그저 다른 역할을 가진다.
by 1noman | 2005/01/04 16:42 | 트랙백 | 덧글(2)
새해, 다시 시작하는 나에 대한 구속
난 구속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의 이성에 의한 철저한 구속을 필요로 한다. 그런 구속이 필요하게 된건 전적으로 그러한 구속없이 살아왔던 나의 발자취 때문이다. 난 23년 동안이나 마초로써 교육받아왔고, 부르주아들의 선전선동에 놀아났으며, 국가주의적 가치를 체득하며 살아왔다. 지난 한 해동안에도 그것을 의식하고, 청산하고자 해왔지만, 아무래도 지난 한 해도 지난 발자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듯 하다. 내안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국가주의적 마초가 살고 있다.
그런 내 존재의 의식으로 인하여, 난 다시 내 이념을 내삶에 적용하는 일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내안에 살고 있는 그 황금과 국가의 마초를 떠나보내기 위해서, 가장 적용될 수 없을것 같은 곳까지 나의 이념을 적용하여, 내안에 숨겨진 나의 옛 흔적들과의 철저한 결별을 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지리멸렬하던 나의 "청춘의 일"을 더 지리멸렬하게 할지도 모를 선언을 하고자 한다.
난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사회주의자다. 이른바 원내 제1당의 의원들이 처벌조항을 필요로 한다고 이야기하는 바로 그 사회주의자다. 뿐만 아니다. 난 여성주의자다. 한국 사회 전반에서 고귀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데에 추호의 의심조차 허용되지 않는(빌어먹을!) 결혼제도와 가족주의, 즉, 가부장제에 명백히 반대하는 여성주의자다. 그런 면에서 내 "청춘의 일"에 나의 이념이 적용되지 않았던 건 상당히 난해한 모순이다.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은 남녀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니까 말이다. 그런 과거를 철저히 청산하는 의미에서, 난 이 시점에서 이런 선언을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사회주의라고 부르던 여성주의라 부르던, 나의 이념은 억압된 약자의 권리를 찾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억압하는 자의 입장에 서고 싶지 않다. 따라서, 난 가족내에서 마초로서 작용하는 가장의 역할을 할 생각이 없고, 그러므로 나와 함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여성은 명백한 자신의 삶의 주체여야 할 것이다. 이 당연한 말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빈번히 어겨지는 말이며, 따라서 이런 선언을 함으로써 내 "청춘의 일"이 얼마나 큰 고난을 겪을지 모르는바 아니지만, 난 나의 이념을 내 삶에 투명하게 적용하기를 원한다. 나는 내 삶의 동반자가 페미니스트 여성이기를 기대한다.
by 1noman | 2005/01/02 03:34 | 혁명전야 | 트랙백 | 덧글(0)
로마의 휴일-최선의 아름다움과 최악의 추악함의 교접
곧 다가올 성탄절은 널리 알려져 있듯 로마제국의 휴일이다. 놀랍다. 예수의 탄생 기념일이 예수를 죽인 제국 로마의 휴일이라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일은 탄생 이후로 성탄절은 예수와 무관했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누굴까? 좀더 정확히,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감히 예수의 삶을 평가하는 건 건방질지 모르겠지만, 대게, 예수의 삶에서 화려함을 찾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일 것이다. 또, 그의 삶에서 환락과 사치를 찾는 것도 어려울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삶에서 가진 자들의 부의 창출을 정당화 해주는, 혹은 강자들의 약자에 대한 착취를 지지하는 그 무엇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는 그 반대였다. 그는 약자들과 함께 고통 받았으며, 그는 스스로 세상의 가장 약한 자가 되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그를 최선의 아름다움으로 기억하게 한다.

그러나, 지금의 성탄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성탄절은 일년의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어느 날 보다 환락과 사치가 넘친다. 성탄절은 자본가집단의 이익 창출이 극대화 되는 시점이며, 그것은 노동자 계급의 지갑에 대한 테러로 이어진다. 그날에 나와 당신이 마시는 와인은 세계의 어느 구석에서 억압받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의 피이며(칠레산 포도주에 침을 뱉으라!), 그날에 나와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석유는 짓밟힌 아랍인들의 고통위에 얻어진 것이다(그날은 그 더러운 피값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날이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그날을 최악의 추악함으로 추억하게 한다.

매 해, 연말이 오면 내가 아는 최선의 아름다움과 최악의 추악함이 뜨겁게 교접한다. 그들 사이에선 다시 누군가 흘려야 할 피와 눈물이 재생산된다. 성탄절만큼이나 화려한 그 이름,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by 1noman | 2004/12/08 21:38 | 혁명전야 | 트랙백(1) | 덧글(0)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라.
아무한테나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사람이 되어라.
by 1noman | 2004/12/01 21:04 | 스치는 감상 | 트랙백 | 덧글(0)
자아비판
난 지난 한달 동안 이루 헤아릴수 없는 실수들을 해왔다.
난 나의 이념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고, 그것들에 대한 분명한 반성없이 지난 한달간을 보내왔다.

난 날 비판한다. 내정신의 가장 예민한 칼로 난 나의 지난 삶을 다시 한번 꺾어 내가 가던길을 바꾸어 가고자 한다. 그것은 다시 차가운 이성의 첨탑위에 힙겹게 서있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고, 난 그렇게 할 것이다.

내 삶을 그저 낭비해 버리기엔 난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살았다. 난 Noblesse Oblige(이건 얼마나 건방진 표현인가!)를 실천해야 한다.
by 1noman | 2004/11/22 16:16 | 혁명전야 | 트랙백 | 덧글(0)
미국은 좌파에 목마르다.
그렇다. 바로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by 1noman | 2004/11/17 21:32 | 혁명전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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